결론부터 말하자면…중국 모형시장과 산업의 발전에 놀랐다?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중국 모형 업계의 발전은 블로그를 접기 전인 2020년에도 이미 예상된 부분이었는데요. 당시 중국 모형 소식을 모니터링할 때도, 저작권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오리지널 IP 개발 시도와 라이선스 협력의 빈도가 차츰 늘어나는 추세였으니까요. 그 때만 해도 ‘이런 노력이 지속되면 반다이도 무시할 수 없겠다’ 이런 생각이었는데, 블로그 복귀하고 보니 왠걸 이젠 너도나도 오리지널 IP이고 일부는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한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더군요. 옛날엔 카피와 오리지널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수준이었는데 말이죠.
몇년 사이에 이렇게 시장이 커지고 업체들의 수준이 높아진 이유를 찾는다면, 아무래도 소비자의 높아진 눈높이로 인한 업체들 간의 치열한 경쟁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흠…설명을 위해 그간 블로그 포스팅을 하면서 중국의 건담 모형 시장의 과거와 현재를 한번 얘기해볼까요.
일단 과거 중국의 건담 모형은 카피, 카피, 그리고 또 카피였습니다. 반다이 제품은 물론이고, 한국 모델러 분들의 작품들도 카피해 상품화했죠. 다만 기술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제품 품질에서는 언제나 악평이었습니다. 조형은 좋지만, 조립하면서 손가락이 부르트고 순접은 마구 사용하는…완성 후엔 가동이 아닌 세워두는, 누군가는 만들다가 그대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던 제품이 딱 그 시절 중국 프라모델 제품이었죠.
이게 대체 언제적... |
그러다가 제가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시점쯤…? 다반과 용도자가 경쟁하던, 지금은 호랑이 담배피던 그 시절을 거치면서 슬슬 카피의 품질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다반의 가성비 카피와 용도자의 마개조가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구요. ‘모형이 돈이 된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이를 기점으로 중국 내 프라모델 시장이 상당히 활발해졌습니다. M3, 이후이모형, 썬토이즈, 기동왕자, 데빌아츠, 닐슨공방, 하비스타 등 많은 업체들이 등장했습니다.
단순 카피만 만들던 다반도 마개조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젠 반다이가 놓친 아이템, 품질 관리, 스타일리쉬한 조형, 소비자의 조립 경험이 관심사가 됩니다.
이 흐름 속에서 업체들의 제품 품질-조립 경험이 조금씩 상향 평준화 됩니다. 여러 업체들은 반다이가 아직 모형화하지 않은 제품들을 생산해 소비자의 지갑을 털어갔습니다 ㅎ 다만, 이 경우에는 그 제품을 반다이가 모형화하는 순간 큰 피해를 입게 되는 단점이 있었죠.
그러다가…이제는 스타일리쉬한, 멋진, 끝내주는, 우와하게 만드는 조형으로 넘어갑니다. 과거 반다이의 카피만 찾던 소비자들이 그 이상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수요는 엄청난 디테일과 마개조의 레진 컨버전킷으로 향했습니다. 컨버전킷 자체는 도색 모델러에게 해당하는 제품이지만, 컨버전킷의 도색 작례들은 프라모델 소비자의 눈높이를 높이기에 충분했습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인피니트디멘션 사자비 |
그리고 이 상황을 중국 합금완성품 업체가 먼저 캐치합니다. 합금완성품 업체들은 컨버전킷 도색 작례를 카피해 합금완성품으로 출시하기 시작했는데요. 안그래도 저작권이 없는 컨버전킷 제작업체 쪽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제품들이 나오자 왕성하게 컨버전킷을 제작하던 몇몇 업체들이 휴업을 선언하거나 다른 업체로 넘어가는 등 타격을 입었습니다.
장고모형의 인피니트디멘션 사자비 합금완성품 |
이후에 컨버전킷 수준의 조형과 디테일은 이제 프라모델 쪽으로 넘어옵니다. 중국 업체들이 컨버전킷 원형사들과 함께 제품을 디자인하면서 오리지널 디자인과 고퀄리티 쪽으로 포지셔닝을 하게 됩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욕심이 너무 과했는지 지나친 파츠 쪼개기와 색 분할로 인한 조립성, 품질 저하가 초래되기도 했는데요. 업계의 치열한 경쟁은 이런 부분조차 개선되도록 업체들을 몰아세웠습니다. 반다이 수준이라고 볼 순 없겠지만…현재 향상된 품질의 중국 프라모델 제품들은 이러한 결과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용도자, 다반 등 저작권 위반으로 인한 단속/체포 언급을 빠뜨렸습니다. 저작권 단속 이슈도 중국 업체들의 지속적인 오리지널 디자인 제작에 영향을 줬죠)
그럼 현재로 돌아와서…지난번 무한신성의 ‘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언급됐었지만, 중국 모형업계는 현재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엄청나게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약육강식, 적자생존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큼 서로 겹치는 영역 많고, 경쟁업체들도 다수 등장했죠. 이제는 평균 or 평균 이상의 품질은 당연하고 여기에 오리지널 IP와 IP 라이선스 제품들도 마구 쏟아내는 상황입니다.
워낙 치열한터라 업체 입장에서는 곡소리가 나고 있고, 경쟁을 못 이겨 사라지거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치는 등 다양한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한 과정처럼, 이미 몇년간의 치열한 경쟁을 버티고, 자리를 잡은 중국 모형업체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소비자들 사이에선 ‘믿고 사는 브랜드’라는 이미지/인식이 생긴 곳도 있습니다. 즉, ‘중국제 = 카피’라는 인식은 이제 끝났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물론 단순 카피도 여전히 이뤄지고 있지만…파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몇년전에 비해 확 줄었으니까요.
얼마 전 일본 후쿠오카에 여행을 가서 여기저기 모형샵을 돌아다녔는데…딱 2가지가 기억에 남더군요. 첫번째는 건프라가 너무 적다, 두번째는 중국 모형업체 제품 종류가 늘었다였습니다. 오렌지캣이 일본 WAVE와 협력으로 유통 중인 테카맨 블레이드, 슈퍼로봇히어로즈 라인업 제품들이 여기저기 보였고, 신시모형의 메탈슬러그나 XIAOT 아이언 로어의 캣 로봇, 이스턴모형의 ATK GIRL 라인업 제품들도 있었습니다. 중국 모형 소식을 모니터링하고 전달하는 입장에서 꽤나 신선한 경험이었네요.
여튼, 중국 업체들은 서로 죽는다고 앓는 소릴 하지만, 라이선스 협력은 더 잦아지고 있고 오리지널 IP도 계속 나오고 있는터라…전체 업계의 관점에서 보자면 모형 업계의 발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 업체는 망해도 고급 인력들은 남고, 업체가 많은만큼 다시 일할 수 있는 환경이니…결국은 선순환이 되겠죠. 이런 치열한 경쟁은 결국 업계 전반의 디자인 수준, 기술력 등의 향상으로 이어지니…후우…이제 한국은 뒤에서 쳐다 볼 수 밖에 없는 건지, 뭔가 좀 씁쓸한 기분도 듭니다.
끝맺음이 이상해졌네요 ^^; 복귀 후에 중국 모형 업계 소식을 보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두서없이 적어봤습니다. 막상 여기까지 쓰고 보니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모르겠군요 ㅎㅎ;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100 따봉 드립니다!!
이상, 어바웃하비의 지지마라였습니다!
예전에 동몽이 단속으로 못 내놓은 제품이나 용도자 블프라던지 이런건 나중이라도 볼수있었으면ㅠㅠ
답글삭제그런 날이 올런지 모르겠네요. 용도자는 물건이 좀 돌아다니긴 하던데...그래도 블프는 진짜 없더라구요;;
삭제다시오셔서 너무 반갑습니다 ㅎ
답글삭제감사합니다 ^^ 이런저런 읽을거리 열심히 전해드릴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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